최근들어 유제품 배달 아주머니(이하 배달원)가 사무실에 배달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원래 오전 9시 전후로 유제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10시 30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예전처럼 일찍 배달해 달라 요구하고 싶지만, 오전 중이면 큰 불편이 없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요구한 적은 없다.
사무실에는 아침마다 여러 명의 배달원이 오가며 직원들에게 유제품을 배달한다. 각자 다른 브랜드 소속이며 그들 간 나름의 고객 유치 경쟁도 있는 듯하다. 신입(또는 전입) 직원 첫 출근 날이면 기존에 알던 직원들에게 홍보 및 소개를 요청해 오는 일도 종종 있다. 물론 서비스 품질 경쟁도 있다. 유제품 배달의 품질은 유제품이 신선한 상태로 적기 배달 오는지일 것이다.
요구르트 판매왕 김준현, <인간의 조건>(KBS2, '14. 12. 6.)
유제품 배달원들은 두 개의 회사 건물에 있는 모든 부서에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사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내 고객 찾기'를 하고 있다. 배달 시작점과 동선에 따라 먼저 배달받는 곳과 늦게 받는 곳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만약 한 사람이 '아침 일찍 9시에 배달해 달라'고 해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배달이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10시 30분경이 되어서야 배달이 왔다. '유제품 섭취 시각(timing)'을 조정해 큰 불만 없이 적응하고 있던 나 말고도 '늦음'에 신경써 온 한 동료 직원이, 오늘 배달원에게 부드럽지만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무장해 있던 그가 티날 정도의 신경질적인 언어로 표현한 그 불만은 오전 내내 나의 뇌리에 맴돌았다.
그 직원: "요즘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좀 일찍 올 수 없나요?" 배달원: "그러려면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요." 그 직원: "그래도 일찍 주셔야지 시간 다 되서 주시면 어떡합니까?" 배달원: "... 네 알겠습니다."
유제품 값과 배달 서비스 값을 '애음료'로 지불하고 '애음'하는 고객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이다. 그러나 '인간미'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배달원과 동료 직원 모두 피차 노동자이다. 다만 배달원은 동료 직원에게 직접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나 동료 직원은 잠재적이고 간접적으로 배달원에게 제공한다.(배달원이 우리회사 고객이고 동료 직원이 배달원에 대한 고객 서비스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 한)
'갑을관계 의식'이 작용해 '왕(王)인 고객'으로 변모한 그 직원, 소속사로부터 투철히 교육받은 '을 정신'이 발동해 무조건 숙이고 보는 배달원, 꼭 이래야 하는 것일까? 엄밀히 배달원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전 중 두 건물에 있는 모든 고객에게 유제품을 배달하는 일이다. 먼저 받는 사람, 늦게 받는 사람에 대한 규정은 없거나 최소한의 특수한 경우만 있을 것이다.(임원, 경비원, 안전관리 직원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고객에 대한 배달은 배달원 재량에 달려 있다. 애음 고객 중 한 명인 우리는 그 재량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요구할 일이 아니라 부탁할 일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배달원이 갑일 수 있다. 우리는 배달원에게 '잘 보여서' 그들이 '귀한 이른 아침 배달'을 우리에게 해 달라고 '매달려야 할' 것이다. 재량껏 할 일을 간섭해 요구하는 것은 떼쓰기와 다름 없다.
물론 서비스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는 '호갱'이 될 필요는 없다. 그때는 정식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면 된다. 다른 유제품 브랜드로 바꾸거나 기존 브랜드를 이용해야 한다면 본사에 클레임을 제기하면 된다. 유제품을 오후 2시에나 배달한다든지, 상한 제품을 갖다 준다든지 해도 참는 것은 바보일 뿐이다.
그러나 오전 내 배달 지연은 서비스 하자라 볼 수 없다. 배달원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것 뿐이고 배달 시각의 편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결혼 후 전사에 답례 떡 돌릴 때, 누군 늦게주니 누군 빨리주니 하던 기억이 있지 않는가?) 배달원에게 '일찍 달라'고 화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른 아침 배달 서비스를 제발 제게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먹히는 방법이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직업의 귀천은 없고, 직접적 재화·용역 제공자라 을이 될 필요도 없다. 모두 노동자이거나 노동자의 가족이다.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서비스가 미흡하면 신사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면 될 일이다. 시장경제 체제 속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서비스 제공자 또한 가능한 수준에서 고객 의견을 수용하고 스스로 몸을 낮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신은 임원이 아닌, 일반 고객들 중 하나'임을 친절하게 알게 해 줘도 된다.
같이 살아가는 우리다. 그리고 너도 나도 귀천 없는 노동자이다.